어둠에서 밝음으로
한때 세존께서 싸왓티(舍衛國)에 머물고 계실 때, 꼬쌀라(拘薩羅) 나라의 왕 빠쎄나디(波斯匿王)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왕이시여, 세상에는 네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네 종류란 무엇이냐?
① 어둠에서 어둠으로 가는 사람[從冥入冥],
② 어둠에서 밝음으로 가는 사람[從冥入明],
③ 밝음에서 어둠으로 가는 사람[從明入冥],
④ 밝음에서 밝음으로 가는 사람[從明入明]이 그것입니다.
남전의 상응부 경전과 한역 잡아함 권42와 별역 잡아함 권4에 나오는 말씀이다. 이 경전에서는 네 가지 종류의 사람에 대한 구체적인 생활양식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경전에 묘사된 네 가지 유형을 대략적으로 알아본다.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어둠에서 나와 어둠으로 들어가는가. 이른바 어떤 사람은 비천한 가문에 태어나서 빈궁하고 단명하며 모양은 파리한데, 거기다가 천한 업을 익혀 남에게 천하게 부리 우면 이것을 어둠이라 하오. 이 어둠 속에 살면서 다시 몸의 악행을 행하고 입과 뜻의 악행을 행하면, 그 인연으로 몸이 허물어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나쁜 세상에 나서 지옥에 떨어지오. 이것을 어둠에서 어둠으로 들어가는 것이라 하오.
어떤 사람이 어둠에서 밝음으로 들어가는가. 이른바 어떤 사람은 천한 가문에 태어나 남을 위해 온갖 천한 업을 하면 이것을 어둠이라 하오. 그러나 그 사람은 어둠 속에서 몸의 선행을 행하고 입과 뜻의 선행을 행하면, 그 인연으로 몸이 허물어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좋은 세상에 나서 천상에 화생(化生) 하오. 이것을 어둠에서 밝음으로 들어가는 것이라 하오.
어떤 사람이 밝음에서 어둠으로 들어가는가. 이른바 어떤 사람은 부(富)하고 즐거운 집에 태어나서, 여러 가지 재물과 종들과 하인이 많고, 널리 친구들을 모으며, 단정하고 총명하며 지혜로운 몸을 받으면 이것을 밝음이라 하오. 그러나 그는 밝음 속에서 몸의 악행을 행하고, 입과 뜻의 악행을 행하면, 그 인연으로 몸이 허물어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세상에 나서 지옥에 떨어지오. 이것을 밝음에서 어둠으로 들어가는 것이라 하오.
어떤 사람이 밝음에서 밝음으로 들어가는가. 이른바 어떤 사람은 부하고 즐거운 집에 태어나서 형상이 단정하고 엄숙하면 이것을 밝음이라 하오. 이 밝음 속에서 몸의 선행을 행하고 입과 뜻의 선행을 행하면, 그 인연으로 몸이 허물어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좋은 세상에 나서 천상에 화생 하오. 이것을 밝음에서 밝음으로 들어가는 사람이라 하오.
이 경전의 내용만으로도 부처님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필자는 이것을 좀더 이해하기 쉽게 네 가지 유형의 사람을 우리 주변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첫째, 어둠에서 어둠으로 가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불행하게 태어나 결국 범죄의 소굴에 떨어져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을 말한다. 예컨대 극도로 가난한 집안이나 비정상적인 가정에서 태어나는 경우가 이에 속한다. 어떤 사람은 미혼모 혹은 부모의 부정에 의해 태어났기 때문에 부모가 누구인지 자신의 출생에 관해 알 수 없다. 이렇게 태어난 사람들은 처음부터 버림받거나 돌보아 주는 사람 없이 굴러다니다가 자신도 그 속에 물들어 밑바닥 인생을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부모가 행한 것처럼 자기도 또 다른 불행의 씨를 잉태시켜 악순환이 반복된다. 흔히 구제 불능의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이 경우에 해당된다.
둘째, 어둠에서 밝음으로 가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그 자신의 출생은 첫 번째와 같지만 자신의 의지에 의해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해 가는 사람이다. 비록 불행한 가정에 태어났지만 그 환경을 탓하지 않고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한 입지전적인 사람이 이에 속한다. 간혹 이런 사람의 미담이 보도되기도 한다. 가장 이상적인 인간형이다.
셋째, 밝음에서 어둠으로 가는 사람이 있다. 훌륭한 가문에 부족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집안에 태어났지만, 그 좋은 환경을 활용하지 못하고 타락의 길로 가는 사람이다. 요즘 사회에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속칭 오렌지 족과 야타 족이 이에 속한다. 이들 부유한 집안의 자제들은 부족한 것이 없기 때문에 더 이상 노력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오늘 하루를 어떻게 즐겁게 보낼 것인가에 만 쏠려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쉽게 술과 마약 등의 유혹에 빠진다. 결국 이들은 향락적인 쾌락을 추구하다 폐인이 되고 만다. 필자는 이런 유형의 사람을 가장 나쁜 사람이라고 본다.
넷째, 밝음에서 밝음으로 가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좋은 가문에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아 이 사회를 움직이는 훌륭한 자리에 오르는 사람이다. 예를 들면 부잣집 자제로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과 후원을 받아 남보다 앞선 교육과 선진 학문을 읽혀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좋은 위치에 오르는 엘리트 계층이 이에 속한다. 모든 사람들이 갈망하는 케이스다.
위에서 소개한 네 가지 종류의 사람 중에서 가장 최상의 사람은 '밝음에서 밝음으로 가는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는 밝음에서 밝음으로 가는 사람에게 찬사와 격려를 보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처음부터 모든 조건과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현재는 비록 어두운 환경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자신의 끊임없는 노력에 의해 밝음으로 가는 사람의 삶이야말로 가장 값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어쩌면 이 부류의 사람을 위해서 설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경전에 담겨져 있는 참뜻은 인간은 출생 성분에 따라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부처님은 다른 경전에서도 인간은 출생 성분에 따라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이 행한 행위에 의해 천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성자도 된다고 했다.
이처럼 인간의 출생은 본래 평등한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에 따라 높은 위치에 있는 인간이 될 수도 있고, 낮은 위치에 있는 인간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한번 정해진 인간의 위치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인간은 점차 향상될 수도 있고, 점차 타락될 수도 있는 가변적(可變的)인 존재인 것이다.
만약 인간이 올바른 길로 나아간다면 그는 부처에까지 이를 수도 있지만, 그가 퇴보를 거듭한다면 점점 더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져들 수도 있다. 어둠에서 밝음을 향해 뛰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를 보내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밝음에서 어둠으로 갈 것이냐, 어둠에서 밝음으로 갈 것이냐는 오로지 자신에게 달려 있다.
<{佛敎} 통권 제484호, 1996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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