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무가의 보배 있다
此身頓頓學爬涉(차신돈돈학파섭)
寄在閻浮若女蘿(기재염부약녀라)
採藥兒常斜日至(채약아상사일지)
辦齋僧與澹雲過(판재승여담운과)
山花不見知春盡(산화불견지춘진)
澗水逾鳴覺雨多(간수유명각우다)
家有瑩然無價玉(가유형연무가옥)
不須他石强消磨(불수타석강소마)
이 몸 세상 기어 다니는 것이나 배워
염부제에 붙어 살기 담쟁이 넝쿨 같다
약을 캐는 아이 항상 해질녘에 돌아오고
재 올리는 스님은 담담히 구름과 지나가다
꽃도 보이지 않으니 봄 간 줄 알고
시냇물 더욱 울리니 비 온 것 깨닫다
집에서 훤히 밝은 가없는 옥돌 있으니
타산의 돌 빌어 다듬을 이유 없다.
혜즙대사의 시이다. ‘석옥화상의 한거운에 차운한다(謹次石屋和尙閑居韻’는 시 7수 중의 셋째 수이다. 석옥화상은 고려 말에 원나라 스님으로 우리 고승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끼친 분이다. 한거라는 한가로움을 주제로 하여 산사의 조용한 경관을 노래하였다. 자신의 처지를 너무 겸손히 여겨 기생하는 담쟁이 정도로 표현하였으니 다음에 이어질 말도 그저 담담한 일상일 것이다.
산사의 하루 약을 캐러 간 아이의 해저녁의 귀가가 하루 해의 마침을 알린다. 재를 올리려 약간은 소란하기도 하였던 스님들의 그림자도 구름과 함께 지나가고 말았다. 이것이 하루의 일과였다. 담담한 정경이다. 이러한 하루하루는 계절의 변화도 특별히 느낄 것이 없다. 꽃이 피면 봄이요 꽃이 없으면 봄이 간 것이다. 아울러 시냇물 소리의 변화가 일기의 청음을 이해하게 한다. 물 소리가 거세졌으니 비가 온 것이고, 물 소리 잦았으니 날씨 가문 것이다. 계절 변화마저 감각 밖으로 내몰아 버린 스님의 정적이다.
집 안에 좋은 보배가 있어 훤하게 밝히고 있다. 보배란 원래 값의 높낮이로 그 귀함을 잴 것이로되, 나의 보배는 값을 매길 수가 없다. 귀하다 천하다는 것은 세속에서 따지는 일이지, 산사에는 이 귀천이 없다. 이것이 바로 보배이다. 다시 여기에다 더 무슨 값을 따질 것인가. 옥돌이라면 다듬어야 값이 높고 이 옥돌을 다듬으려면 타산에서 나는 돌을 가져와야 하겠지만, 나의 보옥은 원래가 세속의 기준이 아니었으니, 다시 더 다듬어야 할 이유가 없다. 이 다듬을 수 없는 보배 이것이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배인 것이다.
이종찬 <동국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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