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스님 법문
1.<0>과 <1>의 세계를 벗어난 삶을 살자
우리는 지금 컴퓨터시대에 살고 있다. 컴퓨터는 이진법의 마술이다. <0>과 <1>의 조합을 바탕으로 한 첨단기계다.
이 <0>과 <1>의 이진법이 첨단과학의 산실이 되고, 첨단과학은 조그만 우리들 주방에서부터 거대한 공장에 이르기까지 기계문명의 숲을 이루고 있다.
세탁기에, 컴퓨터에, 핸드폰과 오디오, 비디오 등등 …… 그래서 우리는 이제 하루라도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기계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
그 <0>과 <1>의 조합이 가져다 준 기계문명에 의존할수록 우리의 삶은 물질적으로 다양해지고 또 편리해 졌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편한 생활이 한편으로는 살아 있는 인간의 영혼을 병들고 하고 삶의 질적인 가치를 오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다.
<0>과 <1>이 만들어 내는 이 기막힌 마술은 거실에 앉아 '마우스'의 클릭 한번으로 시장을 볼 수 있는가 하면 인터넷을 통하여 수 만리 떨어진 아프리카의 오지의 사건들까지 방안에서 보고,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슈퍼컴퓨터와 인공지능 로봇트는 마치 제석천이 세상을 관장하듯 정밀하고 신속하게 거대한 공장의 생산라인과 기업경영을 일사불란하게 척척 처리하고 있다.
<0>과 <1>의 조합이 첨단 과학을 발전시키고 과학은 하늘의 신처럼 지상의 신으로, 절대적 존재로 숭상되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첨단과학의 산실이 되고 있는 이진법의 <0>과 <1>의 조화는 우리의 사고(思考)까지 이분법적으로 깊이 세뇌(洗腦)시키고 있다.
그것은 "all or nothing"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0>은 nothing이요, <1>은 all이다. 전부(all)아니면 전무(全無, nothing)라는 것을 뜻한다.
모든 것을 갖든지 아니면 모든 것을 포기하든지 두 가지 길로 세뇌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yes or no"의 길로 세뇌시키고, <긍정> 아니면 <부정>의 선택을 유도하고 있다.
그래서 이진법의 마술은 우리들 사고를 <전부> 아니면 <전무>요, <예스(yes)>가 아니면 <노(no)>가 되도록 만들고 있다.
필요한 것은 취하고, 필요 없는 것은 가차없이 버리게 된다. 내 입맛에 맞는 것은 "예스"가 되고, 내 입에 쓴 것은 "노"가 된다.
오로지 양자 택일의 길로 우리들을 세뇌시키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돌아가는 길도, 중간에 놓인 샛길도 없다.
그럼으로 모든 결정은 망설임 없이 속전속결로 진행된다. 첨단과학은 그래서 하루가 다르게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있다. 빨리 달리는 말 위에서 뒤를 돌아볼 여유를 갖지 못하듯 이분법의 사고로 앞만 보고 그 신속함과 편리함을 쫓아 달려가다 보니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나>자신을 돌아보는 것을 놓쳐버렸다.
다시 말해서 날마다 새롭게 쏟아져 나오는 기계공산품에 밀려 우리들 생활은 밝아지고, 편리해졌지만 우리의 영혼은 물질에 가려 어두워지고 병들어 고통을 받게 되었다.
이분법의 사고는 과학을 발전시키고, 과학은 우리에게 <편리함>을 가져다주었지만 진정한 마음의 행복까지 가져다 주지는 못했다.
자동차를 한번 생각해 보라. 자동차는 분명 우리에게 빠르고 편리한 교통수단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하여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달리는 즐거움보다 주차의 고통이 따르고, 아기를 돌보듯 관리하고 유지하는데 번거로움이 따른다. 뿐만 아니라 구형의 모델은 신형의 모델에 열등의식을 느끼게 하고, 부와 권위의 상징으로 대변되기도 하는가 하면 때로는 무서운 살인병기가 되기도 한다.
이분법적인 사고는 일의 신속한 효율성과 편리함을 가져다 줄 수는 있었지만 삶의 과정에서 느껴야 하는 인간의 순수한 정서를 앗아가고 있다.
상대성을 벗어난 인간의 감성과 인간 존재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 가장 존귀해야 될 인간의 생명은 낡은 부속품이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듯, 인간의 존재가치가 자동차 구입 시 선택과 옵션을 취하듯, 시장바닥에 나온 상품 마냥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지 못하게 되어 가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0>과 <1>이 만들어 내는 이진법의 마법에 걸려 기계문명의 늪 속에서 이진법의 사고(思考)로 매일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눈만 뜨면 홍수처럼 밀려오는 요란한 매스컴의 정보와 지식에 매달려 <긍정>이 아니면 <부정>이요, <전무(全無)> 아니면 <전부(全部)>라는 사고로 몰아 가고 있다.
선택하든지 아니면 포기하든지 정보와 지식은 우리의 삶을 두 가지 중에 하나를 택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모든 일은 <긍정>이 아니면 <부정>을 택해야 하고, <부정>을 택하면 <긍정>을 버리도록 우리를 세뇌시키고 있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당연히 버려야 된다고 강요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0>과 <1>의 두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일을 선택하면 영혼을 포기하게 되고, 육신의 편함을 선택하면 영혼을 순수성을 포기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오로지 <0>과 <1>의 조합이 창출해 내는 생명 없는 기계모양 효용가치와 결과에 매달려 긍정과 부정의 두 평행선을 바위 같은 무의식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0>과 <1>의 세계는 물질의 세계요, 가시적(可視的) 세계다. 그런데 <0>과 <1>의 두 평행선의 가운데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이 바로 영혼의 세계요, 인간의 감성이 존재하는 불가시적(不可視的)인 세계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순수한 마음이 머무는 곳이다. 선택을 초월한 본래 마음이다.
그래서 두 평행선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이진법의 세계에는 인간의 감성이 개입되지 않는다. 그 선택이란 오로지 효용가치와 편리성과 신속한 결과만을 추구하는 기계문명에 맞추어 살아야 하는 것을 뜻한다.
<0>과 <1>의 조합은 대리석과 쇠와 같이 인간의 따뜻한 순수감성을 차갑게 만들고 영혼을 무디게 만든다. 그리고 삶의 가치는 영혼의 <내면적>인 조화가 아니라 가시적(可視的)이고, 외형적인 사물로 모두 탈바꿈 시켜 놓고 있다.
그래서 컴퓨터 자판기를 무의식적으로 두드리듯 우리의 감성은 비인륜적인 살인과 폭력에도 무감각해지고, 화재사고로 사람이 타죽고, 교통사고로 일가족이 참변을 당했다는 신문의 기사 꺼리는 활자의 크기에 비례하여 잠시 눈을 줄뿐 신문 속에 끼어진 전단지와 같이 금방 쓰레기 통속으로 버려지고 만다.
<0>이 아니면 <1>이 되는 이진법의 논리에 따라 <내> 일은 관심을 갖지만, <남>의 일은 금방 눈을 돌리고 잊어버린다. 남의 일은 <0>으로 당연히 <부정> 되고, <전무(全無)>가 되지만, 내 일은 <1>이 되고, <긍정>이 되고, <전부(全部)>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 영혼의 가치는 육신의 쾌락으로 대체되고, 나와 이웃에 대한 사랑의 관심은 아파트의 벽과 같이 닫혀지고, 어울려 살아야 하는 따뜻한 사회는 <적>과 <동지>의 둘로 갈라져 차갑게 식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 동물이라고 자부하는 사람과 사람과의 유대관계는 단지 돈과 권력을 위한 놀이마당이 될 뿐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하고, 이를 쟁취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온갖 범죄수단에 이용되고 영합되어지고 있다.
학연과 지연은 기본이고, 각종 모임들 예컨대 동창회, 동문회, 친목회, 향우회, 연구소, 산악회 등 심지어 조기 축구회까지 검은 돈이 오가고, 권력과 폭력배와 야합하고, 선배가 후배를 이용하고, 학문적 지식이 단수 높은 사기술과 야합하고 있다. 최근 신문이나 매스컴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각종 "게이트"사건도 이런 일면을 단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는가?
그래서 지성인과 성직자들이 인성(人性)을 부르짖고, 윤리도덕을 외치고, 사랑을, 자비를 외치면서, 한번쯤 영혼의 문제와 자기의 삶을 돌아보도록 절규하지만 <0>과 <1>의 이분법적인 사고에 세뇌된 사고(思考) 방식에 젖은 현대인들에게는 공허한 메아리로 반향(反響)되고 있을 뿐이다.
<선택>은 <분별>을 가져오고, 분별은 <집착>을 가져온다.
그것이 <나>의 마음을 가리고 밝은 지혜를 가린다. 가려진 마음은 홀로 서기를 거부하고 불확실한 것은 배척하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버리고 눈앞에 보이는 가시적인 것들에게 믿음을 걸게 된다. 부동산에, 증권에, 예금통장과 보험증서에…
그래서 인간으로서의 주체성도 자주성도 잃어버리고 감성은 점점 메말라져 가고 있다. 그렇게 하루 하루를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감성은 대리석같이 차갑게 식어만 가고, 마음은 쇳덩어리와 같이 굳어져가고 있다.
그럼으로 현대인들에게는 무엇보다 인간다움의 그 온기(溫氣)를 되찾고 <나>의 존재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0>과 <1>의 두 평행선의 선택이 아니라 <0>과 <1>의 두 평행선의 사이, 그 공간의 선택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자아(自我)>에 대한 성찰(省察)>이 더 절실하게 필요하고, <0>과 <1>에 의존하지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영혼의 자유(해탈)와 행복(열반)을 설하신 불타의 가르침에 더욱 절실히 가까워 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불교를 가까이 하고, 불타의 가르침을 배우고자 하는 것은 적게는 차가운 기계문명으로부터 잃어버린 인간적인 따스한 온기(溫氣)를 회복하는 것이고, 크게는 무의식적으로 <0>과 <1>의 이진법 속에 바쁘게 살아가는 물질문명의 늪에서 잃어버린 참 <나>를 찾기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럼으로 소란한 도시생활을 떠나 한적하고 고요한 절을 찾는 것은 육신의 나들이를 위한 그런 오락이 되어서도 안되고, 법당 안에 있는 각가지 불상(佛像)을 참배하는 것이 한 편의 비디오테이프를 보듯 그런 호기심이나, 현실의 스트레스 내지 고통을 달래기 위한 참배가 되어서 안 될 것이다.
절을 찾고 불상을 참배하는 것은 인간성의 온기(溫氣)를 찾고, 더 나아가 바로 이 마음속에 자리한 본래 <나>를 찾는 공부가 되어야 한다.
내 마음속에 이미 자리한 <진면목(眞面目)>, 그 순수한 <본래의 마음>을 자각하는 것이야말로 그기에 불교의 진수가 있고, 또한 기계문명의 숲 속에서 헤어나는 길이 있고, 나아가서 바른 인간성의 회복과 <나>라는 존재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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