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가 되자
坐處凌頂雲(좌처릉정운)
歸程踏鳥空(귀정답조공)
倚공仍石上(의공잉석상)
回首更山中(회수갱산중)
落葉看流水(낙엽간류수)
疎鍾記晩風(소종기만풍)
邇來留淨界(이래류정계)
顔髮覺成童(안발각성동)
앉아 있는 곳 구름 이마 누르고
돌아갈 길 새처럼 허공을 밟다
지팡이 의지해야 바위 위이고
머리 돌려도 다시 또 산 속
지는 잎에서 흐르는 물 볼 수 있고
성근 종소리에 늦바람을 알겠다
요사이 고요한 세계에 머물러 있어
얼굴빛 머리칼이 어린이 됨 깨닫다.
징월(澄月)대사의 ‘봉서유거(鳳棲幽居)’라 한 시이다.
매우 높은 산사라 앉아 있는 곳은 항시 구름을 억누르고 있다는 것이다. 거처의 높음을 전제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보다도 작자 자신의 고고한 기상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렇듯 높은 곳이니, 오고 가는 길목이 모두 새들이 나는 길과 맞닿아 있어 허공을 밟는 걸음이 된다.
‘허공을 밟다(踏空)’ 역시 묘한 시어이다. ‘허공’과 ‘밟다’라는 말은 결코 한 자리에서 어울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르는 길이 험하니 항시 지팡이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올라 봐야 결국은 바위 위이다. 더 지나간 것이 없다. 가도 가도 그저 바위라는 것이다. 얼마나 왔을까 하여 머리를 돌려 보면 또 산이다. 아무리 와 보아도 산을 벗어날 수가 없다. 여기서 ‘다시(更)’라는 한 글자가 매우 흥미로운 것이다. 아무리 ‘다시’라는 새로움을 추구하여도, 결국은 산 속이다. 시어의 묘미는 이러한 곳에 있는 것이다.
땅 위에 지고 만 나뭇잎은 시선에 잘 들지 않지만, 물 위에 떠내려가는 잎에서는 낙엽의 실상을 볼 수가 있다. 또 흐르는 물의 편에서 보면, 떠내려가는 낙엽에 의해서만이 물흐름의 실체를 오히려 여실하게 살필 수가 있다. 은은히 들리는 종소리에서 해저녁이 되었음을 아는데, 시어는 늦바람을 알다 하였으니, 소리를 실어나르는 도구로서의 바람을 말한 셈이다.
이렇듯 조용한 경지에 있다 보니, 어느 사이 어린이로 변해 있다. 이 어린이로의 변화 이것이 바로 부처됨의 상징이다. 사람의 참됨을 잃지 않은 순수의 경지, 이것이 성불이다.
이종찬 <동국대 명예교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