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골을 들고 찾아간 뜻
일본에서는 새해가 되면 스님들이 신도 집에 찾아가는 풍습이 있다. 새해 첫손님으로 존경하는 스님이 찾아오면 액운이 사라지고 복이 찾아온다는 믿음 때문이다.
일본 무로마찌(室町)시대 임제종의 고승인 잇큐(一休:1394~1481)화상도 어느 해 설날 신도 집을 찾아갔다. 잇큐화상은 27세 때 스승으로부터 깨달음을 인정받은 선사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스님이었다. 큰 스님이 새해 첫날 자기 집을 찾아온다는 말을 들은 신도는 너무나 반갑고 황송했다. 그는 온 집안을 구석구석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식구들과 함께 정중하게 큰 스님을 맞았다.
그러나 잇큐화상을 맞이한 그 신도는 스님을 보자마자 그만 깜짝 놀라 뒤로 자빠질 뻔했다. 잇큐화상은 지팡이 끝에 해골을 하나 달고 있었던 것이다.
“큰스님, 오늘같이 좋은 날 망측스럽게 어찌 해골을 가지고 찾아오셨습니까?”
그러자 잇큐화상은 오히려 근엄하게 말했다.
“오늘이 무엇이 좋은 날이냐? 설이 자꾸 지나가면 마침내 모두 해골이 될 터인데 죽는 것이 그렇게도 좋으냐? 사람들은 오랜만에 만나면 ‘살아가는 재미가 어떠하냐?’하고 묻는다. 그러나 따져보면 우리 인생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 순간부터 죽어 가는 것이다. ‘살아가는 재미’란 ‘죽어가는 재미’에 불과하다. 이를 생각하면 새해를 맞이했다는 것이 오히려 두려운 일이다.”
입을 다물지 못하는 신도에게 스님은 다음과 같은 법문을 하고 돌아섰다.
“이처럼 해가 바뀌어 해골이 눈앞이니 어찌 급하지 않은가? 복을 적게 지으면 지옥보를 받을 것이요. 할 일을 게을리 하면 성취하기 전에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러니 무슨 일을 하든 상근정진(常勤精進)해야 할 것이니라.”
잇큐선사의 법문은 아무래도 새해 첫날 듣기에는 섬뜩한 면이 있다. 그 신도 역시 잇큐선사의 법문을 듣고 가슴이 서늘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선사의 법문은 한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이었다. 새해가 된다고 모두들 기뻐하지만 그것은 죽어서 해골이 될 날이 멀지 않았음을 뜻하는 것이다.
더욱이 아직도 해야할 일이 산처럼 많은 사람이라면 세월이 화살처럼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두려운 일도 없다. 이 사실을 깨달은 그는 스님의 말씀대로 그해 한해를 정말로 열심히 살았다. 그런 덕분에 그는 연말이 될 때쯤에는 어느 해보다 많은 성취의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자본은 시간이다. 인간의 낭비중에서 시간의 낭비처럼 아까운 것도 없다. 시간의 낭비는 인간의 낭비 가운데 최대의 낭비요 최악의 낭비다. 그리고 시간의 낭비는 죄악이다. 잇큐선사는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일깨워주기 위해 새해 아침부터 해골을 들고 신도집을 찾아갔던 것이다.
잇큐선사가 설날 아침에 보여준 해골은 다른 어떤 인사보다 소중한 연하장(年賀狀)이다. 해골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올 한해동안 우리는 새로운 각오로 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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