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는 주는 게 아니라 받는 것
봉사 베테랑들의 “실천 이래서 좋다”
옛 속담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다. 1년이 멀다하고 고층건물이 올라가고,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는 오늘에 비추어 볼 때 이처럼 잘 맞아떨어지는 속담은 없는 듯 하다. 그러나 언제나 예외가 있듯 1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어려운 이들을 보듬어 안는 따뜻한 ‘마음’이 그것이다.
지난 10월 2일 적게는 10년에서 많게는 20년 가까이 불우 이웃과 하나되어 살아가는 4명의 불자를 만났다. 마음을 나누고, 자비행을 실천하는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았다.
“봉사 아닌 직업이죠”
10년째 국립재활원에서 목욕봉사를 해오고 있는 정형자(55·보현행) 씨는 “하루 24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정 씨가 시간에 쫓기듯 살아가는 이유는 국립재활원 외 경희의료원, 서울대병원 등에서 일주일에 5일을 목욕봉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 씨는 아무리 급한 용무가 있어도 봉사는 빠지지 않는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봉사와 집안 일을 병행하기 위해선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하루는 입원해 있을 때 목욕을 시켜드렸던 할머니가 찾아 온 적이 있어요. 의정부에 사는 할머니였는데 퇴원 후 혼자 목욕을 할 수 없어 매주 수요일이면 아침부터 이곳을 찾아 왔어요. 성치 않은 몸으로 이곳을 찾는 이들을 위해 하루라도 빠지면 그들이 얼마나 실망하겠어요.” 보수는 없지만 자신의 목욕봉사를 평생직업이라고 여기는 정 씨는 그들의 등을 밀어줄 힘이 없어져도 이곳을 찾아 따뜻한 눈길, 말 한마디를 건네는 이가 되는 것이 꿈이다.
“하심(下心)이 곧 봉사”
서울 불광사 자원봉사단 단장 윤정로(60·대혜행) 씨는 ‘밥짓는 아줌마’로 통한다. 80년대 중반부터 사찰 무료급식봉사를 시작으로 서울노인복지센터 급식봉사를 하고 있으며, 지난 10월 2일 개원한 광진노인종합복지관 무료급식봉사도 하고 있다.
20년 가까이 무료급식봉사를 해온 윤 씨는 봉사의 의미를 “주는 것이 아닌 받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봉사를 통해 하나를 줬다면 열 아닌 백 개를 얻었다는 윤 씨는 “무료급식봉사를 통해 잘못된 잣대 없이 사람을 볼 수 있는 눈을 얻었고,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처음 무료급식봉사를 시작하던 그 마음으로 다시 봉사를 시작하겠다는 윤 씨를 보면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무료 한방진료소 ‘꿈’
16년째 서울 충정로 수효사에서 무료한방진료를 하고 있는 홍경일(45) 씨는 ‘약왕보살’로 통한다. 매주 화요일이면 어김없이 이곳을 찾는 홍 씨는 평균 20여명이 넘는 무의탁노인들을 위해 수지침이나 부황, 뜸 등을 놓아주고 있다.
홍 씨는 “대부분 이곳 지역 노인들이지만 가끔 다른 지역에서 수효사를 찾는 노인들이 있습니다. 물론 입소문을 듣고 이곳을 찾아주는 노인들에게 고마운 마음도 있지만 그만큼 무의탁노인이나 저소득 노인들이 무료 진료를 받을 곳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현재 수효사 외 소쩍새마을, 자제정사 등에서도 자원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홍 씨는 한 가지 소망이 있다. 무의탁노인이나 저소득노인들이 마음껏 쉴 수 있고 한방진료를 받을 수 있는 무료한방진료소를 개소하는 것이 꿈이다.
“봉사와 나이는 상관없다”
“남을 돕는데 나이는 중요치 않습니다. 봉사는 꼭 젊은이들이 해야된다는 법은 없지요. 10살 난 아이나 70 먹은 노인이나 남을 위한 마음은 다 같지 않겠어요.”
불교자원봉사연합회 장례의식봉사팀 ‘정토의 전화’ 회장을 맡고 있는 조용선(69·대성) 씨는 봉사의 시작은 남을 위한 마음이 중요할 뿐 나이는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장의 봉사를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가 ‘젊어 보인다’라는 말입니다. 나이 들어 남을 도울 수 있어 좋고, 그 덕에 건강까지 챙길 수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일석이조’ 아니겠습니까.”
장례봉사가 많은 달에는 6∼7건이 겹치는 경우도 허다 하는 조 씨는 한 건당 꼬박 4일을 보내야하는 것을 감안하면 한달 내내 봉사한 적도 적지 않다.
“특별히 봉사시간을 정해놓고 하는 봉사가 아닌 통에 봉사 시작 후 변변한 여행 한번 가본 적이 없었다”는 조 씨는 “그래도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노인”이라고 말했다.
법보신문
김형섭 기자
<2003-10-08/72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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