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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度依지현(2011-08-07 15:57:45, Hit : 410,) 
 연기법(의존적 발생의 법)붓다다사 빅쿠 법문

연기법(의존적 발생의 법)붓다다사 빅쿠 법문        
아찬 붓다다사(1906~1993) 스님은 태국의 고승으로 20세 때 출가했다. 26세 때인 1932년 자신의 고향에 수안 목을 창설했다. 스님은 이곳으로 중심으로 새불교 운동 즉, 초기불교의 이념을 충실히 따르면서 수행을 하자는 내용을 주창해 실천함으로써 불교사의 큰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의존적 발생의 법)

Talked by Buddhadasa Bhikkhu

Translated by Steve Schmidt from the Thai to the English

붓다다사 빅쿠 법문

스티브 슈미트에 의해 태국어에서 영어로 번역

It was my original intention to write a detailed explanation for the study of the book Paticcasamuppada in the Words of the Buddha. But in the end, for reasons of health as well as other matters, I was not able to do so. As it happened, there was a talk I had given on another occassion which more or less fit just the purposes I wanted. That talk also appears in another book of this series, entitled Idappaccayata (The Law of Conditionality). It will prove quite useful for those studying Paticcasamuppada because, in fact, they are the very same thing. The only difference is that Idappaccayata is broader in scope. In any case, the student of Paticcasamuppada should use these explanatory notes as a starting point for his or her study.

'붓다의 말씀 속의 연기법'이란 책을 공부하기 위한 상세한 설명서를 쓰려고 했으나, 건강과 다른 여러가지 이유로 결국 실행할 수 없었습니다. 마침 원하는 목적에 어느 정도 맞는 법문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법문 내용은 '이답빳짜야따(조건법)'라는 제목으로 이 시리즈의 다른 책에 나와 있습니다. '조건법(이답빳짜야따)'은 연기법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매우 유용할 것입니다. 사실 연기법과 조건법은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조건법이 연기법보다 더 범위가 넓습니다. 아무튼 연기법을 공부하는 학생은 공부를 시작할 때 이 주석(조건법 설명서)을 이용해야 합니다.

The study of the Law of Dependent Origination or Paticcasamuppada is important and necessary for followers of the Buddha as is shown in the following passage from the Pali Scriptures:

“There are two doctrines (dhamma) well taught by the Exalted One who knows, the Awakened One who is free from all defilements and perfectly enlightened by Himself. All bhikkhus should study these two doctrines well and there should be no division or contention concerning them. In this way this Holy Life (religion) will long stand firm. Those two doctrines will be for the great benefit of all mankind, for the well being of the world, and for the advantage of great beings and human beings. What are those two doctrines? They are :

(1) Skillful understanding concerning the sense bases (ayatana-kusalata), and

(2) Skillful understanding concerning the Law of Dependent Origination (paticcasamuppada-kusalata). [Sangiti Sutta, Digha-nikaya]"

연기법(의존적 발생의 법)에 대한 공부는 불자에게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팔리 경전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고상한 아는 자이고 오염원에서 해방된 깨달은 자이며 스스로 완전히 깨달은 자께서 가르치신 두 가지 교의(담마)가 있다. 모든 수행승은 이 두 가지 교의를 잘 공부하여 이 교의와 관련한 불화나 언쟁이 없어야 한다. 이와 같이 하면 이 신성한 생활(종교)은 오래도록 견고하게 지속될 것이다. 이 두 가지 교의는 온 인류를 크게 이롭게 하고 세상을 행복하게 하고 위대한 존재(천신)와 인간을 유리하게 할 것이다. 이 두 교의는 무엇인가? 이 두 교의는,

(1) 감각 기초에 관한 능숙한 이해 (아야따나-꾸살라따)와,

(2) 연기법에 관한 능숙한 이해 (빠띠짜사뭅빠다-꾸살라따)이다." [상기띠 숫따, 디가 니까야]

This passage shows us that we should try to help each other to understand correctly Dependent Origination for our own benefit, for the benefit of the religion and for the well being of all great beings and humans. Most especially, we must strive for mutual understanding in order to eliminate divisive bickering amongst the followers of the Buddha, which leads to problems in putting Dependent Origination into practice. We must take advantage of any means which help us to arrive at that mutual understanding. This present exposition is not intended to establish complex argumentative conditions. Rather, this work is offered in the hope of helping to eliminate any contentiousness which may exist among teachers and students of Paticcasamuppada, as well as for any other groups of people who may be interested in studying this doctrine.

이 구절은 우리 자신의 이익과 종교의 이익과 모든 위대한 존재(천신)와 인간의 이익을 위해 연기법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서로 도우는 데 힘써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불자 사이의 불화를 일으키는 말다툼을 제거하기 위해 서로 함께 이해하는데 노력해야 합니다. 불화를 일으키는 말다툼은 연기법을 실천하는 데 문제를 야기합니다. 우리는 서로 함께 연기법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우는 데 모든 수단을 이용해야 합니다. 지금 이렇게 연기법을 설명하는 것은 복잡한 (문제를 야기하는) 논쟁 상황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설명은 이 교의를 공부하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모임 뿐만 아니라 연기법에 대해 교사와 학생 사이에 있을 지도 모를 불화를 없애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하는 바람에서 행합니다.

The Law of Dependent Origination is a deeply profound subject. It may properly be called the heart or the essence of Buddhism. And so it necessarily gives rise to problems which in turn become a danger to Buddhism in so far as the followers of the Buddha will derive no advantage from this essential teaching. When the Venerable Ananda said to the Buddha that he, Ananda, thought that Dependent Origination was an easy and a shallow matter, the Buddha replied:

"Ananda! Ananda! Don't say such a thing! Don't ever say such a thing! Paticcasamuppada is a profound teaching. Its characteristic feature is that it is profound. The various groups of sentient beings don't understand what we teach about this; they are not able to penetrate the Law of Dependent Origination and so their minds are befuddled just like a ball of twine which becomes all tangled up and knotted; just like a disorderly pile of tangled pieces of short threads; just like an untended thicket of grass or reeds which become all interwoven and entangled - just so are those beings ensnared and unable to free themselves from the wheel of existence, the conditions of suffering, the states of hell and ruin."

This passage shows us that Dependent Origination is not a play thing. Rather we must make a firm resolution and utilize our intellectual faculties to their fullest in the diligent study of Paticcasamuppada.

연기법은 매우 심오한 주제입니다. 연기법은 불교의 심장 또는 진수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심오하므로 연기법은 불자들이 이 불교의 진수에서 아무 이득도 얻을 수 없는 한, 이번에는 불교에 위험이 되는 문제를 일으킬 수 밖에 없습니다. 아난다 존자가 붓다께 자신이 생각하건대, 연기법은 쉽고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했을 때 붓다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난다여! 아난다여! 그렇게 말하지 말라! 한번이라도 그렇게 말하지 말라! 연기법은 심오한 가르침이다. 심오하다는 것이 그 두드러진 특징이다. 다양한 유정체의 그룹에서는 우리가 가르치는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연기법을 꿰뚫어 볼 수 없으므로, 얽히고 매듭지어진 실뭉치 같이, 엉킨 실조각들이 무더기로 너저분하게 쌓여 있는 것 같이, 돌보지 않은 풀과 갈대의 덤불이 혼합되어 얽혀 있는 것 같이, 그들의 마음은 바로 그와 같이 혼란되어 있다. 바로 그래서 그들은 존재의 바퀴, 고통의 조건, 비참하고 타락한 상태에 얽매여  해방될 수 없다."

이 말씀은, 연기법은 놀이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굳은 결심을 하고 지적 능력을 최대로 이용하여 연기법을 꾸준히 공부해야 합니다.

The average person, the ordinary householder, believes that he possesses a personal, lasting self. Such people know only the doctrine of eternalism: the doctrine that mind and/or body eternal (sassata-ditthi). These people will find the Law of Dependent Origination too profound to understand easily. For such people, Paticcasamuppada becomes a matter of deeply convoluted philosophy that gets all tangled up like the ball of twine mentioned in the Sutta. These people will spend much effort in debate and dispute just as with the blind men who could come to no agreement concerning what an elephant was like because each had felt only a single different part of the elephant.

일반 재가자인 보통 사람은 개인적이고 영속하는 자아가 자신에게 있다고 믿습니다. 이런 사람은 마음 및/또는 몸이 영원하다는 견해(사싸따-딧티)인 영원주의의 견해만 압니다. 이 사람들은 연기법이 너무나 심오해서 쉽게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연기법은 경전에서 언급된 실뭉치 같이 완전히 얽히게 된 깊고 복잡한 철학적 문제가 됩니다. 이 사람들은 코끼리의 서로 다른 부분을 만져 보았기 때문에 코끼리가 어떠한 지에 대해 견해가 일치할 수 없는 여러 장님과 같이 토론과 언쟁에 많을 노력을 하게 됩니다.

For the arahat, however, a fully enlightened person, Dependent Origination becomes like second nature or plain science, similar to something which can be casually examined while resting in the palm of one's hand. And this knowledge of the enlightened person does not depend on a knowledge of names or words. What this means is that the arahat, or enlightened person, knows things so well that he doesn't grasp at, cling to or become attached to anything at all. He has no craving or desire (tanha), or attachment (upadana), no matter what kind of emotions beset him, because the enlightened person has completely perfected mindfulness. Such a person can completely extinguish suffering by following the order of extinction of Dependent Origination. But it is not necessary that an enlighted person know the names of the eleven conditions of Dependent Origination. He may not be able to teach anyone about the Law of Dependent Origination in detail or may not even be able to say anything at all about it.

그러나 완전히 깨달은 아라한에게는, 연기법은 손바닥에 놓여 자유롭게 수시로 검토될 수 있는 것과 유사한, 습관 또는 일상과학과 같이 됩니다. 깨달은 사람의 이 앎은 명칭이나 말로 아는 것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깨달은 사람인 아라한은 사물을 잘 알므로 어떤 것에도 전혀 애착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어떤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깨달은 사람은 전적으로 완전한 마음챙김을 유지하므로 어떤 종류의 감정이 몰려 오더라도 갈망(땅하)하거나 집착(우빠다나)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연기법에서 고(둑카)가 소멸되는 순서에 따라 고를 완전히 소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깨달은 사람에게는 연기법의 11가지 상태의 명칭을 아는 것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깨달은 사람은 연기법에 대해 누군가에게 상세히 가르칠 수 없을 수도 있고 (연기법에 대해) 전혀 어떤 것 조차도 말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This is what is meant when it is said that Paticcasamuppada is a deeply profound matter. Dependent Origination is so profound that even the Perfectly Enlightened Buddha had to use his full intellectual faculties to discover it and to set out a teaching suitable to all people. Nonetheless, it is still a difficult matter to understand, which is why the Buddha, just after his enlightenment, was at first inclined not to teach it to anyone at all. This was so because the Buddha saw that it might be a wasted effort - there would be so few capable of understanding such a difficult teaching. But, finally, the strength of his compassion compelled the Buddha to bear with the difficult task of teaching this deeply profound doctrine of Dependent Origination. He felt compassion for those few beings in the world who would be able to understand this teaching. We must appreciate the great problem which faced the Buddha in trying to explain this teaching, which is not easily understood by ordinary people.

이것이, '연기법은 깊고 심오한 문제다'라고 말할 때, 이 말이 의미하는 것입니다. 연기법은 너무 심오하여 완전히 깨달은 붓다께서도 그것을 발견하고 모든 사람에게 적합한 가르침으로 상술하여 보여주는 데 모든 지적 능력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기법은 아직 이해하기가 어려운 문제입니다. 붓다께서 깨달은 바로 후, 처음에 어떤 누구에게도 전혀 가르치시려고 하지 않은 이유가 이것입니다. 이같이 어려운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으므로 헛된 노력만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국 붓다의 측은지심은 이 깊고 심오한 연기법의 교의를 가르치는 어려운 일을 떠 맡도록 했습니다. 붓다께서는 이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는, 이 세상의 소수의 존재를 측은히 여기셨습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이 가르침을 설명하는 노력에서 붓다께서 봉착하셨던 큰 어려움을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One profound fact concerning this matter is that, in the difficult task of making his teaching known, the Buddha had to use two languages at the same time. He spoke in the language of relative truth in order to teach morals to people still befuddled with the idea of eternalism - those who feel that they are selves, that they possess things. Such people feel this way to the point that they habitually cling to these ideas and become attached to them. But the Buddha also spoke in the language of ultimate truth in order to teach those who had only a little dust in their eyes so that they could come to an understanding of absolute reality (paramattha-dhamma). The teaching of absolute reality was designed to free people from their long held and cherished theory of eternalism. So it is that there are these two kinds of language.

이 문제와 관련한 한 가지 뜻깊은 사실은, 붓다께서는 가르침을 펴는 어려운 일을 하실 때 동시에 두 가지 언어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붓다께서는 '영원주의'의 개념에 푹 빠져 있는 사람, 즉 자신이 자아이고 사물을 소유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도덕률을 가르치시기 위해 상대적 진리의 언어(일상 언어)로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사람은 습관적으로 이 개념(영원주의)에 집착하는 사고방식으로 느끼고 이것(도덕률)에 애착하게 됩니다. 그러나 붓다께서는 또한 오염이 덜 된 사람을 가르쳐 궁극적 진리(빠라마타-담마)를 이해할 수 있게 하도록 궁극적 진리의 언어(담마 언어)로 말씀하셨습니다. 궁극적 진리의 가르침은 오랫동안 영원주의의 이론을 붙들고 소중히 간직해온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데 뜻을 두었습니다. 이와 같이 이 두 종류의 언어가 있습니다.

As far as Dependent Origination is concerned, it is a matter of ultimate truth and must be spoken of in terms of the language of ultimate truth. It is the complete opposite of morality. How can it be, then, that Dependent Origination can be spoken about by using the language of relative truth which is used in talking about morality? If the common language is used, then it is not possible to speak about Dependent Origination. And if the language of ultimate truth is used, listeners who lack right understanding will interpret everything in terms of the language of relative truth and so not understand anything at all, or they will understand incorrectly. They may understand the exact opposite of what is meant. This is the source of the difficulty in teaching about the Law of Dependent Origination, Which at first led the Buddha to be disinclined to teach what he had discovered in his enlightenment. Even after the Buddha decided to teach, there was still misunderstanding, as in the case of Bhikkhu Sati, the fisherman's son (see below). And there is still misunderstanding among all of us at present. In teaching, speaking about and discussing Paticcasamuppada, we tend to do so with misunderstanding. Having been taught, we are not able to put it into practice, or we practice more and more incorredtly as we go along. So it is that Dependent Origination is a difficult topic to teach.

연기법에 관해서는, 궁극적 진리의 문제이므로 당연히 궁극적 진리의 언어로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도덕률의 말씀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도덕률을 설명할 때 사용되는 상대적 진리의 언어(일상 언어)로 어떻게 연기법에 대해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일상 언어를 사용한다면, 연기법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궁극적 진리의 언어(담마 언어)를 사용한다면, 올바른 이해력이 부족한 사람은 모든 것을 상대적 진리의 언어(일상 언어)로 해석하여 (연기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거나 그릇되게 이해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연기법이) 의미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이해할 것입니다. 이것이 연기법을 가르칠 때 어려움의 근거이고, 붓다께서 깨달으신 것을 처음에 가르치시기를 주저하시게 한 것입니다. 붓다께서 (담마를) 가르치시기로 작정하신 후에도, 어부의 아들인 사띠 수행승의 경우처럼 여전히 그릇된 이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우리 모두 중에는 여전히 그릇된 이해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릇된 이해로 연기법을 가르치고 말하고 논의하기 일쑤입니다. 그릇된 이해로 가르쳐졌기 때문에, 연기법을 실천(수행)에 적용할 수 없거나, 이에 따른 실천은 더욱 더 그릇된 실천으로 이끌게 됩니다. 그러므로 연기법은 가르치기가 (가장) 어려운 담마입니다.

When teaching morality, it is necessary to speak as if sentient beings existed, as if persons, selves, and even the Ththagata, existed. It is even necessary, in teaching morality, to go so far as to teach that people should make merit, so that when they die they will receive the results of that merit. But when teaching the ultimate truth, the Buddha spoke as if sentient beings, persons, even the Tathagata himself, did not exist. There are only those interdependent events which arise for a moment and then pass away. Each of those events is called paticca-samuppanna-dhamma (events which arise by reason of the law of conditionality) and are called Paticcasamuppada when they are connected together in a chain or string of events. There is no way to say "who" or "self" in any of those moments, even the present one, so there is no one born and no one to die and receive the results of past deeds (karma), as in the case of the theory of eternalism. Moreover, it is not a matter of dying and disappearing altogether, as in the theory of annihilationism (uccheda-ditthi), because there is no one to be annihilated after this moment. Being here now is Dependent Origination of the middle way of ultimate truth, and it goes together with the noble eightfold path - the middle way which can be used even in matters of morality.

도덕률을 가르칠 때는 유정체가 존재하는 것처럼, 사람, 자아, 그리고 따타가따(붓다)도 존재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도덕률의 가르침에서 사람들에게 공덕을 짓도록 가르치고, 죽을 때 공덕의 결과를 받을 것이라고 가르치는 한에 있어서, (이러한 말은) 더욱 필요합니다. 그러나 궁극적 진리를 가르칠 때, 붓다께서는 유정체, 사람, 그리고 따타가따 자신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씀하셨습니다. 한 순간 일어났다 사라지는 상호 의존적 사건들만 있습니다. 그 사건들의 각각을 '빠띠짜-사뭅빠다-담마'(인과 관계의 법칙에 따라 일어나는 사건)라고 부르며, 그것들이 함께 연결되어 사건의 고리 또는 끈이 될 때 '빠띠짜사뭅빠다'(연기 또는 연기법)이라 부릅니다. 지금 이 순간은 물론이고 어떤 순간에도 '누구' 또는 '자아'라고 부를 만한 점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태어나는 자도 없고 죽는 자도 없고 과거 행위(깜마)의 결과를 받는 자도 없습니다. 이는 영원주의가 아닙니다. 또한, 모두 완전히 죽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므로 절멸주의(우쩨다-딧티)도 아닙니다. 이 순간 후에 절멸될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궁극적 진리로서 중도인 연기(법)는 지금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 연기는 고귀한 여덟 가지 길(팔정도)과 함께 하며, 도덕률의 면에서도 사용될 수 있는 중도입니다.

Usually, ordinary people cling to the way of morality in order to have minds that are peaceful because of the goodness that they do. This state can last for as long as the causes and conditions of their goodness do not change. But when those causes and conditions change, or manifest their uncertainty and selflessness (anatta) and become dissatisfactory (dukkha), because clinging has arisen, then a knowledge of morality alone will not be able to serve as a refuge. And so it becomes necessary to turn to ultimate truth, such as Dependent Origination, in order to alleviate the feeling of dissatisfaction which becomes greater and greater. That is, it is necessary to have a mind which is above the idea of having a self or of anything belonging to a self, a mind which is even above the ideas of good and bad, merit and demerit, pleasure and pain, In this way it is possible to eliminate completely dissatisfaction or suffering. Teaching Paticcasamuppada in such a way that there is a self persisting over a series of lives is contrary to the principle of Dependent Origination and contrary to the principles of the Buddha's teaching, which teaches people to eliminate the feeling of self, to be completely above the feeling of being a self. Therefore Dependent Origination is in no way conderned with morality, which must depend upon a theory of eternalism, a theory that depends upon the existence of a self.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은 선행으로 마음이 평화롭도록 도덕률에 집착합니다. 이 평화로운 상태는 선행의 원인과 조건이 변하지 않으면 지속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인과 조건이 변하거나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자아가 없으며 불만족하다는 것이 드러나면 집착이 일어나므로 도덕률을 알고 지키는 것만으로는 피난처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점점 더 커지는 불만족감을 경감하기 위해 연기법 같은 궁극적 진리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게 됩니다. 즉, 자아가 있다는 개념이나 자아에 속하는 것이 있다는 개념을 초월하는 마음, 선과 악, 장점과 단점, 즐거움과 괴로움에 대한 개념을 초월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와 같이 하여 불만족과 괴로움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습니다. 연속되는 삶에 영속하는 자아가 있다는 식으로 연기법을 가르치는 것은 연기법의 원리에 상반되고 붓다의 가르침에 상반됩니다. 붓다께서는 사람들이 자아의 느낌을 제거하고 자아가 되는 느낌을 완전히 초월하는 상태가 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므로 연기법은 도덕률과 관련된 점이 없습니다. 도덕률은 반드시 영원주의와 자아의 존재를 기초로 합니다.

In any case, we can say that there may be two kinds of Paticcasamuppada. The first kind is inflated or incorrectly explained so that it cannot be practiced. Such an incorrectly explained theory has been taught for a thousand years. The second or correctly explained kind of Paticcasmuppada is explained according to the Buddha's intentions. It can be practiced here and now. Results can be had here and now. This second Law of Dependent Origination teaches us to be careful whenever there is contact between the senses and their objects. Feeling must not be allowed to brew up or give rise to craving. Indeed, such practice is being done in many places without calling it ""Paticcasamuppada"" and the results are always satisfying. People interested in this matter, however, must take care to follow the correct version of the Buddha's Dependent Origination since there are these two versions mixed up with each other. The real Dependent Origination of the Buddha is not annihilationism, which, as people who like to argue are quick to point out, leads people to not doing good, not accepting responsibility or not loving their country. Furthermore, the real Dependent Origination of the Buddha is not eternalism, which causes people to become obsessed with the self or country or anything which is seen as "me" or "mine."

아무튼, 두 종류의 연기법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종류는 부풀려지고 그릇되게 설명되어 실천할 수 없는 연기법입니다. 그릇되게 설명된 연기법을 1000년 이상 가르쳐 왔습니다. 두 번째 종류는 바르게 설명되어 붓다께서 의도하신 바와 일치하는 연기법입니다. 바르게 설명된 연기법은 지금 여기에서 실천할 수 있으며 그 결과를 지금 여기에서 바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두 번째 종류의 연기법은 감각 기관과 대상이 접촉할 때마다 주의깊게 알아차리라고 가르칩니다. 느낌이 갈애로 진전되어 갈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실로 이러한 실천(수행)은 '연기법'이라고 부르지 않으면서 많은 곳에서 행해지고 있으며 그 결과는 항상 만족스럽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붓다의 연기법이 바르게 설명된 것에 따르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두 가지로 설명된 연기법이 서로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붓다께서 원래 가르치신 연기법은 절멸주의도 아니고 영원주의도 아닙니다. 논쟁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연기법 중에서) 바로 지적하는 절멸주의는 선행도 하지 않고 책임감도 받아들이지 않으며 자기 나라를 사랑하지도 않게 합니다. 영원주의는 사람들이 '자아'나 '나라' 또는 '나' 또는 '내 것'으로 보이는 것들에 집착하게 합니다.

The Law of Dependent Origination is not simply a matter of inflated study and memorizing as most people tend to say. Rather, it must be a matter of skillful practice: mindfulness must be present to control feelings when sence contact arises. Craving and attachment must not be allowed to arise. And in this practice, it is not necessary to use the word "Paticcasamuppada," which is merely a very technical term.

연기법은 대부분의 사람이 흔히 많이 공부하고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단순히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능숙한 실천적 문제임에 틀림없습니다. 즉, 감각 접촉이 일어날 때 느낌을 통제하기 위해 마음챙김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갈애와 집착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 실천(수행)에서 '연기법'이란 말을 사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말은 단지 기교적인 용어입니다.

One thing that we must help each other to be careful about is not to explain Dependent Origination, the heart of Buddhism, in terms of animism, which teaches that there is a mind or a spirit or a soul or some such thing which is like a ghost - a "self" that is born or is in the body all the time after birth. In this age of atoms, space and pingpong, there are university students and educated westerners who would laugh at such a concept of the "ghost in the machine." Let us rigorously help save the face of Thai Buddhists. Don't take the teachings or morality in the language of relative truth, the language of eternalism, and mix it with the teaching of ultimate truth, Dependent Origination, which uses the language of the highest right views. The practice of Dependent Origination is the middle way of ultimate truth. In the sutta, it is said that the highest right view, supramundane right view, is the view that is neither eternalism nor annihilationism, which can be had by the power of understanding Dependent Origination. Dependent Origination is in the middle between the ideas of having a self and the total lack of self. It has its own principle: "Because there is this, there is that; because this is not, that is not." It is this principle which makes Buddhism neither eternalism nor annihilationnism. Look carefully. Don't teach a new Buddhist theory of Paticcasamuppada. Don't teach Hinduism or Brahmanism. For eternalists there can be no such thing as the Law of Dependent Origination because it is the exact opposite of their theory. To teach Dependent Origination in terms of eternalism is to destroy Dependent Origination. This is what we must be careful about.

우리는 (연기법을 이해하도록) 서로 도와야 하지만 주의해야 할 한 가지는 불교의 핵심인 연기법을 애니미즘의 면으로 설명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애니미즘은 영속하는 마음이나 정신 또는 영혼이나 유령 같은 것, 즉 (다시) 태어나거나 태어나서 항상 몸에 거주하는 자아가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이 원자 시대, 우주 시대 그리고 주고받는 (협력의) 시대에, 대학생이나 교육받은 서양인들에게는 '움직이는 것에는 유령(영혼)이 있다'는 그러한 개념은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태국 불교에서 외형을 제외하고는 (불교를 이해하기 위해) 엄격하게 취급하여 서로 도웁시다. 영원주의 언어인 상대적 진리의 언어로 설명하는 도덕률의 가르침을, 고차원적 바른 견해의 언어를 사용하는 연기법이라는 궁극적 진리의 가르침과 섞지 마십시오. 연기법에 따라 실천하는 길은 궁극적 진리의 중도입니다. 경(숫따)에서는, 고차원적 바른 견해 또는 초세속적 바른 견해는 영원주의도 아니고 절멸주의도 아닌 견해이며 이 견해는 연기법을 이해하는 능력이 있을 때 생길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연기법은 자아가 있다는 견해와 자아가 전혀 없다는 견해의 중간을 취합니다. 연기법에는, "이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므로 이것이 없다.(역주: 빠알리 원 경전에 따라 '이것'으로 번역)"는 그 자체의 원리가 있습니다. 불교를 영원주의도 아니고 절멸주의도 아니라고 하는 것은 이 원리 때문입니다. 주의깊게 바라보십시오. 연기법에 대한 새로운 불교 이론을 가르치지 마십시오. 힌두이즘이나 브라마니즘을 가르치지 마십시오. 영원주의자에게는 연기법과 같은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연기법은 영원주의 이론과는 정반대이기 때문입니다. 연기법을 영원주의의 면으로 가르치는 것은 연기법을 파손하는 것입니다. 주의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If we examine the original Pali Scriptures, the teachings as given by the Buddha himself, we will see that they are clearly divided into matters of morality, for those still attached to an eternalist view, and matters of ultimate truth, which are intended to eliminate both the eternalist and the annihilationist points of view. Later on, during the time that the commentaries were being composed, there arose a widespread tendency to explain matters of ultimate truth in terms of the eternalist theory, including such matters as Paticcasamuppada. Whenever the opportunity arose, explanations were given in terms of the same person who died. Sometimes everything was explained in terms of gross materialism. For example, hell was explained as a place beneath the ground and a place that a person went to only after death. No reference was made to the hell that arises in the flow of Dependent Origination, a more fearful kind of hell which is present in this life. If any reference was made to hell as arising from feeling according to the Law of Dependent Origination, it was usually located under the earth after death.

붓다께서 직접 설하신 가르침을 담고 있는 초기 빠알리 경전을 조사해 보면, 가르침은 두 부분으로 확연히 나누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전히 영원주의의 견해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을 위한 도덕률의 가르침과, 영원주의와 절멸주의의 견해를 모두 없애기 위한 궁극적 진리의 가르침이 그것입니다. 주석서가 편찬되던 후대로 오면서 연기법 같은 그런 사항을 포함하여 궁극적 진리에 관한 사항을 영원주의의 견지에서 설명하는 경향이 널리 펴졌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동일한 사람이 죽는 (그리고 태어나는) 견지로 설명되었습니다. 어떤 때는 완전히 물질주의의 견지로 설명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지옥은 지하에 있는 곳으로서 사람이 죽은 후에만 가는 곳으로 설명되었습니다. 연기법에 따라 일어나는 지옥, 즉 이 삶에서 겪는 더욱 두려운 지옥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없었습니다. 연기법에 따라 느낌에서 일어나는 지옥에 대한 언급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항상 죽은 후에 지하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In studying Dependent Origination, it is necessary to take the original Pali Scriptures as a foundation. Don't surrender to the commentaries with your eyes and ears closed. Don't submit yourself one hundred persent to later works, such as the Visuddhimagga. Indeed, it is believed that the author of the Viduddhimagga is the same person who collected all the commentaries together, so that total blind acceptance of the commentaries will allow only one voice to be heard, giving rise to an intellectual monopoly. We must guard our rights and use them in a way consistent with the advice given by the buddha in the Kalama Sutta and according to the principle of mahapadesa as given in the Mahaparinibbana Sutta. According to this principle of mahapadesa, anything which in not in accord with the major part of the Dhamma-Vinaya (the teaching and the discipline) should be regarded as heard incorrectly, remembered incorrectly, explained incorrectly, or taught incorrectly, as the case may be. In this way we will be protected against later works which slip into eternalism. With the principle of mahapadesa in hand, we can choose what is correct from the large pile of rubbish which has been smoldering in those works. And we will find a lot that is correct. It's not that there is nothing of value at all in the commentaries, but that we must be rigorous in choosing what to accept, using the Buddha's own guidelines to separate out what is not correct. A recent scholar, Somdet Phra Maha Samanachao Krom Phraya Vachira Nyanna Varorot, adivised that we should investigate carefully, as mentioned above, even the carefully memorized Pali dissertations. I have been a faithful disciple of his all along. As far as Paticcasamuppada is concerned, there is weighty evidence to dismiss both the theory of eternalism and the theory of annihilationism. To teach the Law of Dependent Origination with reference to one individual spanning three lives cannot be accepted according to the principle of mahapadesa.

연기법을 공부할 때에는 초기 빠알리 경전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눈과 귀를 막은 채로 주석서에 (모든 것을) 내맡기지 마십시오. 청정도론 같은 후대의 저작물에 자신을 완전히 따르게 하지 마십시오. 청정도론의 저자는 모든 주석서를 집대성한 사람과 동일하다고 믿어지므로 주석서를 맹목적으로 받아 들인다는 것은 단지 한 목소리만 듣게 하여 지적인 독점을 불러 일으키는 것입니다. 정말로 그렇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권익을 지켜야 하며, (그러므로) 깔라마 경에 언급된 충고에 따르고 마하빠리닙바나 숫따(대반열반경)에 언급된 마하빠데사의 원칙에 따른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마하빠데사의 원칙에 의하면, 담마와 위나야(가르침과 규율)의 대부분과 일치하지 않는 것은 그 무엇이라도 경우에 따라, 잘못 듣고, 잘못 기억되고, 잘못 설명되고, 잘못 가르쳐진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이 방법을 사용하여, 영원주의에 물든 후대의 저작물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마하빠데사의 원칙을 지닌다면, 이런 저작물의 연기나는 쓰레기 더미에서 바른 것을 선택할 수 있고, 올바른 것을 많이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주석서 전체가 아무 가치도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올바르지 않은 것을 분리하여 버리기 위해 붓다께서 말씀하신 (안내) 지침을 사용하여, 수용할 것(올바른 것)을 선택하는 데 엄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근 학자인 '솜데트 프라 마하 사마나차오 크롬 프라야 바찌라 냔나 바로로트'는 신중하게 기억되는 빠알리(원)문 조차도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주의깊게 검토해 보아야 한다고 권고하였습니다. 나는 줄곧 이 분의 충실한 제자입니다. 연기법에 관한 한, (경전에는) 영원주의와 절멸주의의 양자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는 유력한 증거가 있습니다. 한 개체가 3생에 걸쳐 관련되는 것으로 연기법을 가르치는 것은 마하빠데사의 원칙에 비추어 볼 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The following principles are concerned with Dependent Origination:

아래 원리는 연기법에 관한 것입니다.

(1). Every time there is sense contact without wisdom concerning liberation, there will be becoming (bhava) and birth (jati). To put it another way: when there is only ignorance present at the point of sense contact, the Law of Dependent Origination is put into motion.

(1). (오염원에서) 해방되는 지혜가 없이 감각 접촉이 일어날 때는 항상 '되어짐(바와)'과 '탄생(자띠)'이 있습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감각 접촉이 있을 때 무지가 나타나면 연기법이 작용합니다.

(2). In the language of Paticcasamuppada, the words "individual", "self", "we", and "they" do not appear. There in no "person" who has suffering or extinguishes suffering or flows about in the whirlpool of rebirth, as Bhikkhu Sati, the fisherman's son, held.

(2). 연기법의 언어에서, '개인', '자아', '우리', 그리고 '그들' 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어부의 아들인 수행승 사띠가 품고 있는 것과 같은, 괴로움을 받거나 괴로움을 소멸하거나 재탄생의 소용돌이에서 떠도는 사람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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