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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현(2009-06-26 09:54:26, Hit : 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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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수선사

혜수선사

혜수는 보통의 스님들로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원칙론자였다  
  
은둔이라는 책의 내용중 일부를 올려 봅니다



땅위 봉암 용곡엔 물이 흐르고 하늘엔 희왕산을 넘어온 구름들이 흐른다.
사시사철  산문을  봉쇄하고  참선 정진하는  봉암사 납승의  발걸음이  날래다
머무르지 않은 떠돌이 괴각승 혜수의 그림자 또한 그랬을 것이다

이 인근 문경 농암에서  태어난 혜수는  열여섯 살에 오대산 상원사로 출가했다.  그는 봉암사 희랑대 토굴 등에서 잠시 정진한 뒤 정처 없이 전국을  떠돌았다.  그러다 1980년대 초 불과 40여세로 입적했기에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없다.
그는 선방에서 안거(여름과 겨울에  3개월씩 하는 집중 참선 수행)가 끝나면 바랑 하나 메고 곧장 길을 나섰다. 한곳에 이틀 머무는 경우도 많지 않았다. 양말이 흘러내릴 정도로 황새처럼 가는 다리로 날듯이 산을 탔다. 1년이면 그렇게 전국의 산과 절을 세바퀴씩돌 정도였다.
이곳 회랑대 토굴에서 정진하던 그를 지켜보았고 몇차례 결제를 함께했던 파주 보광사 회주 효림 스님은 혜수를 '이시대 마지막 괴각승'으로 기억한다. 괴팍하기 짝이 없는 선객이었다는 것이다.
혜수는 늘 사람들의 상시과 교유하는 법이 없었다. 그는 직설적이었고,  남의눈치를 살피지 않았다. 상원사에선 주지가 절돈을 착복하자 법단에 올리는 불기에 똥을 담아 올렸다가 쫓겨났던 그였다.
혜수는  보통의  스님들로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원칙론자였다.   그래서  대부분의  스님들은  그를   지극히  부담스러워했고, 회피하려고 하기까지 했다.
그는  절밖에서 자장면을 먹을때도  오신채(마늘,파,부추,달래,흥거)를  넣지말라고  했고,  음식은  양넘  하나까지 남김없이  먹었다.  다른 스님이  음식을  남기면  절집이나  밖에서나  음식을  함부로  남겨선 안된다면  자신이  다 먹어치곤 했다.

혜수는 선승이자 군자였다.  군자대로행이라던가. 혜수는 장부가 문을 두고 돌아갈수 없다며 늘 대문을 이용했다.
도반들과 함께 만행을 할때 였다. 대구 팔공산 동화사를 향해 갈때 도반들은 군자대로행이라는  혜수를 골려주기 위해 동화사에 앞질러 가서 절집의 대문격인 천왕문을 잠가버렸다. 천왕문 옆은 툭 터져 얼마든지 드나들수 있었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혜수는 들어오지 않았다. 도반들은  "우리가 장난을 해 화가 나서 돌아갔는가 보다"며 그냥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길을 나서 천왕문에 나와보니 혜수는 그때까지 그대로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도반들이 사죄했지만 그는  태연하게 "밤새 서서 참선을 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내실 있게 절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강원도 동해 삼화사 주지 원명스님과 경북 상주 남장사 주지관도 스님도 입을 맞춘 듯  "이 시대에 찾아보기 어려운 도인"으로 혜수를 기억하고 있었다.
원명은 혜수와 한겨울에  상원사에서 북대까지 오른적이 있었다. 오대산은 눈이 많기로 유명하다. 나이가 어렸던 원명은 당시  산을 오르면,  발목까지 덮이는 농구화를 신었다. 그러나 혜수는 털신을 신고 있었다. 털신은 눈이 많이 쌓인곳에선 신발이 눈에 빠지곤 하기 때문에 눈밭을 걷기 어려웠다. 그래서 혜수는 아예 털신을 벗어들고 맨발로 눈밭을 걸어 올라 갔다. 원명은 농구화를 신고도 발이 시려 참기 힘들었다. 그런데 혜수는 맨발로도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게 아닌가. 원명은 그런 혜수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험한 눈밭을 헤치고 지나 드디어 북대에 도착했다.

혜수의 발은 아예 꽁꽁 얼어 붙어 버린듯 했다. 한발짝 내딛기만 해도 얼음이 쪼개지듯 발이 갈라지는 통증을 느낄것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혜수는 얼음물을 대야에 퍼담아  발을 담그는 것이 아닌가.

얼음이 든 발을 서서히 녹이기 위한 것이라곤 하지만, 꽁꽁 언 발을 또 얼음물에 넣는 다는 것은 보통 사람으로선 엄두를 낼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 봤던 원명은 "육체의 고통 정도는 아예 초탈한 모습이었다"고 기억했다.

몸을 한갓 이슬처럼 여겼으니 물건인들 말해 무엇할까.  '욕쟁이 선사' 춘선이 혜수의 소문을 듣고 그를 위해 누비옷을 해 보냈다. 당시 누비옷을 최고급으로, 스님들이 평생 한번 걸치기 어려운 옷이었다. 그럼에도 혜수는 다른스님이 그옷 참 좋아 보인다고 하자, 자기몸에 결쳐보지도 않은 누비옷을 그에게 줘 버렸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헤수는 그렇게 소유에서 해탈한 모습이었다.
혜수는 앉을 때는 늘 결가부좌로 앉았다. 황새처럼 가는 다리로 결가부좌로 앉으면 요지부동이었다. 잠이 와도 앉아서 잔다는 식이었다.  선방에서 조는 그를 보고 어떤 선승들은  "잠을 자려면 편하게 누워서 자고, 나중에 일어나서 다시 정진할것이지 저게 뭐하는 짓이냐"고 피니하기도 했지만, 혜수는 개의치 않았다. 졸든 졸지 않든, 정진을 위해 눕지 않는게 원칙이었고 남이 어떻게 보는가는 상관치 않았다.

수행의 힘이 아니면 일부러 조작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육체에 굴복하지않겠다는 그 철벽 같은 의지는 일찍이 갓 출가한 학승 때부터 싹을 보이기시작했다. 그가 해인사 가원에 머물던 시절이었다. 해인사에선 매년 동안거 중 12월8일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성도절이 되면   대중들 가운데  희망하는 이들이  모여 일주일간 용맹정진을 했다.  선원에선 혜수에게 참여를 허락하지 않았다. 성격이 괴팍하다는 이유였다. 누구보다간절히 용맹정진을 원했던 그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은 거절이었다. 선방에서 용맹정진이 시작된 시각, 혜수는 절 어디에서도 눈에 띄지 않았다. 일주일 뒤  용맹정진을  마친 스님들이  처소로  돌아와보니  방안에서 구린내가 진동했다.  스님들이 코를 틀어막고 탁자밑을 살피자 혜수가 그밑에서 결가부좌를 하고 있는것이 보였다.

그의 다리는 굳어진채로 펴지지도 않았다. 다른 스님들이 병원에 데려가서야 구부러진 다리를 펼수 있었다. 일주일간 먹지도 마시지도 자지도 않고 똥오줌도 그 자리에서 누었던 것이다. 그는 그렇게 육체를 조복받았다.
혜수는 글씨를 읽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시력이 안 좋았다. 그런데도 "역대 조사들은 안경 쓴일이 없다"며  안경을 않쓰고 살았다. 눈이 워낙 나빠서 비문을 읽을 땐 손을 더듬거려가며 읽어야 했고, 책을 볼때도 눈앞에 바짝 갖다대야 볼수 있었다. 그러나 혜수가 애초부터 그렇게 시력이 나빳던 것은 아니었다.

혜수는 대탐험가 였다. 특히 그는 불법의 탐험가 였다. 출가승이라면 일찍부터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고 부처님의 영험을 믿을 터였지만, 혜수는 본인의 체험없는 믿음을 치지 않았다.  철저한 검증을 통해 자신이 본것만을 믿었고, 한번 믿은 것에 대해선 불굴의 신심으로 밀고 나갔다. 어느날 그는 대웅전에 탱화로 그려진 신장의 눈에 바늘을 꽂아 버렸다. 절집 안에서 있을수 없는 짓이었다. 혜수는 "진정 이 신장에게 영험이 있다면 이렇게 해를 끼쳤으니 내눈을 그대로 두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때부터 혜수의 시력이 갑자기 나빠지기 시작했다.  신장이 진짜 영험이 있는지 없는지 자신의 눈을 내놓고 실험을 감행한 것이다. 두려움 많은 세인에겐  기도 안찰 실험이었다.

그를 지켜보았던 선승인 관도 스님은 "틀에 박힌 격식을 거부하고 , 몸뚱이로도 과감히 실험하는 그런 선승을 남의 눈치나 살피는 세상 어디에서 다시 찾아 볼수 있겠느냐"고 했다.

혜수는 1980년대 초 선방 결제 뒤 남장사를 바람처럼 지나갔다. 안거를 끝낸 관도가 남장사에 와보니, 발걸음이 잰 혜수는  이미 남장사를 거쳐 사자평을 넘어 갔다고 했다  그것으로 마지막이었다.
혜수는 바로 사자평을 넘어 열반해 버렸다.
혜수는 앉은 채로 숨을 그쳤다고 했다.

사망신고를 받은 경찰은  '앉아 있는 주검'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간첩의 독침을 맞으면 즉사한다는 소문도 있던 때여서 병원으로 옮겨 해부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독침을 맞거나 독극물을 마신 흔적이 있을 리 없었다.
그날 사자평을 넘으며 젊은 선승들에게 혜수는  "선사라면 선사답게 좌탈입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밀양 표층사 내원암에 도착해 발을 씻고 객실에 앉았다. 객실에선 선승들이 모여 차를 한 잔 나누웠다.
이때 낮에 혜수의 말을 들었던 한 젊은 선승이 혜수에게


"스님은  좌탈입망의 경지까지 갔는냐"며 따지듯이 물었다. 그말이 끝나고,
선승들의 눈길이 혜수에게 꽂혔다.   그런데 헤수는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찻잔을 그대로 손에 든채 였다.
찻잔에서 차가 흘러 쏟아졌지만 혜수는 흐르고 흐르지 않음에  더이상 관여치 않았다.
구름이 가듯, 옷을 벗듯 혜수는 그렇게 허물을 벗어 버렸다.
그가 방장이나 조실이었다면 달마나 육조같은  조사들이나 하는 것으로 전해진 좌탈입망이 현실로 나타났다며
세상이 요란할 일이었지만, 떠돌이의 법구는 조용히 불태워져 산에 뿌려졌다.
탑도 세워주는 이 없었고, 상좌 하나 없으니 그를 기리는 제사도 없다.

희왕산의 나무가 소리없이 물들고 있다.  옷을 벗으려나 보다. 혜수가 간것도 가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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