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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현(2004-01-19 06:41:43, Hit :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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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법사 석산 스님

                        정법사 석산 스님(펌)                        

석산 스님
<br>   성북동 길상사를 오른쪽에 두고 언덕길로 조금 오르다가 우측으로 보면 성북동에서는 가장 오래된 절인 정법사(正法寺)가 나온다.<br> 원래는 복전암(福田庵)이라고 불리우던 작은 암자였는데 1960년 석산(85세, 17세에 출가) 스님이 오시면서 중창을 하여 정법사라 이름하였다. 복전암이 언제 누구에 의해서 지어졌는지 자세한 문헌은 없지만 범종과 열반도(涅槃圖)가 1922년에 제작된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추측된다.<br> 삼청동과 성북동 사이에 터널도 뚫리고 길도 좋아져 지금은 마을이 빼곡히 들어서 있지만 스님이 오실 당시만 하더라도 길상사가 있던 대원각까지 맑은 개울물이 흘렀고, 삼선교까지 걸망을 메고 30분씩을 걸어다녀야만 했던 산길이었다고 한다.<br> 삼각산 줄기인 구진봉 자락 밑에 자리해서인지 정법사 일주문에 들면 이곳이 서울 한중심에 있는 도심사찰인가 싶다. 무엇보다 항상 그 자리에 여법하게 계신 팔순이 넘으신 석산 노스님을 만날 수 있고, 스님께 그 옛날 이야기며, 출가수행 이야기, 부처님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어 생각만 해도 향냄새가 은은하게 풍겨오는 곳이다.<br> 스님은 거의 일평생을 산문출입을 하지 않으시고 사시공양과 아미타불 염불을 놓지 않으셨다. 일체의 명예욕이나 감투, 문중 개념과 욕심이 없으신 그 모습 그대로 출가수행자. 그래서 곁에 계신 분들은 자다 만져봐도 틀림없는 스님이라고 칭한다.<br> 그저 한 그루의 오래된 소나무마냥 그 향기와 자태를 그대로 보여주시는 스님이 서울 한복판에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청복이 아닐 수 없다. 스님의 말씀을 도란도란 듣다보면 세월속에 배어나온 진솔한 부처님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그것은 분명 산소와도 같은 말씀들이다.<br>

스님! 스님은 생전 화를 안 내신다고 들었습니다. 살다보면 화가 날 때가 참 많은데 스님은 화가 안 나시는지요.<br> 화 내면 자기 손해지. 중은 다 비워야 해. 미운 사람 좋은 사람, 좋고 싫고가 없어야지. 그것이 다 욕심에서 비롯되거든. 그리고 설령 화가 난다고 해도 참지 못하면 사람이 아니지. 모름지기 사람이니까 참아야 해.<br>

작년엔 특히 건강이 좋지 않으셨다고요.<br> 올해 내 나이가 여든다섯이야. 많이 살았지. 이제 갈 때가 되었구나 싶어 잘 되었구나 싶더군. 청담 스님도 오래 된 자동차를 끌고 다니지 말라. 새 자동차로 바꾸라고 하셨지. 기계도 오래 되면 망가지는 것 아닌가. 본래 자리, 한물건도 없는 그 곳으로 빨리 가고 싶어. 닦을 곳 없는 그 곳으로 가야지. 이태면 될 것 같아.<br> 다행히 금년부터 두 끼 이상은 먹히질 않아. 자연 곡기가 끊어지면 더 좋은 거지.<br>

탑돌이 하시듯 법당 주위를 이렇게 매일 돌고 계신데… <br> 사는 날까지는 아픈 데 없이 살아야 하지 않겠어? 그래야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 되고. 하루에 만 보를 걸어야 건강에 좋다고 하는데 그만큼은 못 걷고 한 사천 보 정도는 걷는 것 같아. 법당 주위를 이렇게 돌면서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하지.<br>

설산 스님의 사경 노트

지금도 그러하시지만 스님의 염불은 남한 최고라고 할 정도로 목청이 좋으셨다고 들었습니다만.<br> 그래. 내가 염불을 하면 환희심이 나고 듣는 이들도 부처님이 하강하신 것 같다고 했지. 실지로 염불을 하면 제불보살이 환희하시지. 범어사며 해인사에 살면서 염불을 가르치기도 했어.<br>

염불은 어디에서 배우셨습니까.<br> 건봉사에서 배웠어. 역사적으로 보면 만일염불회가 처음 개설된 도량이 금강산 건봉사지. 발징화상(發徵和尙)이 창도한 만일염불회의 동참대중은 중 31인, 신도 1,828인이었다고 해.<br> 신라 경덕왕 17년(758)에 극락왕생을 발원하고 일만일 염불정진을 시작, 27년 5개월 만인 병인년(786)에 만일이 되었는데 그 날 금빛 찬란한 아미타불이 현신하여 염불대중을 차례로 극락으로 인도하였다고 『삼국유사』에 전하고 있어.<br> 건봉사 강원에서 낮에는 사집을 공부하고, 저녁에는 염불당에서 염불을 배웠어. 염불 배울 때 내가 남들보다 좀더 잘 했고, 그래서 염불을 가르치게도 되었지. 정말 신심나는 일이었어.<br>

요즈음은 염불을 제대로 배우고 싶어도 마땅히 가르치는 곳이 없다고 합니다.<br> 그래. 다들 선(禪)으로만 치우쳐서 염불당이 거의 없어져 버렸지. 조계종 사찰에는 선방만 있지 염불당이 없어.<br> 염불은 지성으로 하면 그 공덕이 아주 크지. ‘나무아미타불’을 아침 점심 저녁 시간을 정해서 각 1시간씩 열심히 하면 아주 좋아.<br> 정법사 신도들에게도 그렇게 권하고 있지. 하루에 최소한 천념은 해야 해. 열심히 염불하는 가운데 부처님 가호가 오고, 신심이 바로 서고, 내 길이 밝아지고 하는 것이 다 그 공덕이지.<br>

금강산 건봉사는 만해 한용운 스님이 계셨고, 봉명학교가 세워져 일제하의 민족사상 계몽교육의 구심이 되기도 한 대가람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스님께서 공부하시던 당시 건봉사 이야기를 좀더 들려주시지요.<br> 내가 공부하던 그 시절, 만해 스님이 건봉사 조실로 계셨는데 가끔 법문도 해주시고, 강원에서 강의도 하셨어. 스님은 법이 워낙 크신 분이라 곁에 가 뵙기도 두려웠을 정도였지.<br> 스님은 강사스님들의 법문과는 달리 주로 선법문을 하셨는데 법상에 올라가 먼저 주장자를 세 번 딱 치고는 “의심나는 것이 있으면 물어라?”고 큰 소리로 말씀하셨어. 그러면 그 어느 누구도 감히 나서질 못하고, 그냥 그대로 꼼짝 않고 법문을 듣곤 했지.<br>

은사스님을 만난 것도 건봉사에서 였지요? 은사이신 보광 스님은 어떤 분이셨나요.<br> 은사 스님은 일본 유학을 하셨고, 동국대학교 전신인 혜화전문학교 교수도 지내신 분이야. 불교학자이면서도 선공부도 열심히 하신 분이지.<br> 일제시대라 웬만한 스님들이 모두들 결혼을 했는데 우리 스님은 그 동안 노장들이 너무 무능해서 상좌들을 결혼시켜 중들을 망쳤다고 하시며 끝까지 비구를 고집하셨지. 아무래도 결혼해서 처자식이 생기면 공부는 멀어진다는 거야. 오욕을 벗어나지 않고서는 일평생 중노릇 해도 나쁜 과보를 받는다면서 모든 것을 다 버려야 한다고 가르치셨어.<br> 해방 되기 1년 전에 건봉사에서 서울로 나왔는데 은사 스님은 가회동포교당에서 재가신도를 위한 포교활동을 하셨는데 그 밑에서 원주를 보며 살았지.<br> 그러다 6.25전쟁이 터졌고, 정전이 되자 해인사로 떠났어. 그 때만 해도 정화가 일어나기 전이라 대처승들과 같이 있을 때였지. 강원에서 공부를 하려면 쌀이나 돈을 내야 했는데 피난 다니던 가난한 중이 돈이며 쌀이 어디 있어. 쌀과 돈 대신 건봉사에서 배운 염불을 가르치고, 그 곳에서 강원 공부를 했지. 그리고 간 곳이 범어사야.<br>

설산스님

당시 범어사에는 동산 스님이 주석하고 계셨습니까.<br> 그래. 1950년 대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을 모시고 여러 철을 살았어. 동산 스님의 신심은 놀라울 정도지. 지금까지 그런 신심을 가진 스님은 보질 못했어.<br> 대개 대중이 많은 큰절 조실스님은 예불에 안 나오기 마련인데 동산 스님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예불에 나오셨어. 아니 다른 대중보다 먼저 일어나 각단을 돌며 예불을 올리고 예불이 시작되기 전에 대웅전에 와서 턱 앉아계셨지.<br> 그리고 스님은 매일 아침공양이 끝나면 반드시 빗자루를 들고 나와서 도량청소를 했는데, 매일 쓰는데 무엇이 더 쓸 것이 있겠어. 그런데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마당을 쓸었어. 쓸 것이 없어도 쓰는 거야. 쓸 것이 없는 것을 쓴 것이지.<br> 본래 부처님 법이라는 것이 닦을 것이 없는 걸 알고 닦아야 바로 닦는 것이지, 닦을 것이 있는 줄 알고 닦으면 바로 닦지 못한다고 했어. 닦을 것이 없는 것을 닦는 것이 제대로 닦는 것이지. 스님을 보면서 중의 참된 맛을 비로소 알게 되었지.<br>

스님 방에 좌우명이라고 해서 오계가 벽에 붙어있는데 <br> 나는 ‘계정혜 삼학을 닦자’를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아 살아왔어. 좌우명을 정해놓고 항상 열심히 닦는 것이 최선의 수행이지. 나이를 먹을수록 자기 자신에게 엄격해야 해.<br> 중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몸으로 짓고, 입으로 짓고, 뜻으로 짓는 모든 업을 닦고, 계율을 지키고 행하는 것이 바로 중이지.<br> 참선 잘하면 선객이요, 법문 잘하면 법사요, 강의 잘하면 강사요, 염불 잘하면 염불인이요, 그것이 중은 아니야. 계가 기본이야. 계를 지키지 않고서는 결코 부처의 길로 들어설 수 없지.<br> 일반 재가불자도 마찬가지야. 불자는 모름지기 그 기본이 계를 제대로 지키는 것에서 비롯되는 거지.<br>

스님! 건너마을 평창동 정토사 설산 스님께도 자주 서신을 주고 받으신다고 들었는데 뭐라고 쓰시는 지 궁금합니다.<br> 중은 자고로 계를 잘 지켜야 하고, 신심이 있어야 하고, 부지런해야 하고, 끈기가 있어야 해. 그것이 중의 조건이지.<br> 그래 “오늘도 예불 잘 했느냐? 염불은 잘 하고 있느냐? 안 했으면 왜 안했느냐. 내일도 잘 하거라. 거짓말은 했느냐 안 했느냐. 했으면 왜 했느냐…” 뭐 이런 말들로 안부를 묻고 서로를 탁마하고 있지. 이제 남은 도반들도 몇 없어.<br>

스님께서는 지금 이생을 떠나시더라도 여한이 없으시다고 하시는데 혹 남기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면 들려주시지요.<br> 동산 스님은 아침에 앓다가 저녁에 돌아가셨어. 돌아가시는 날(76세)까지 새벽예불을 하셨지.<br> 그런데 늙어보니 퇴타심이 절로 생겨. 정진도 젊었을 때 해야지. 나도 75살이 넘고 보니까 퇴타심이 생기면서 게을러지더라고.<br> 빈손으로 왔는데 무얼 가지고 가겠어. 속인들이야 자식이 있으니까 필요한 것이 많지만 중이 무엇이 필요하겠는가.<br> 상좌 법진(法眞, 52세)이 배울 만큼 잘 배웠고, 주지를 맡아서 나보다 훨씬 잘 하고 있어. 나이 차이도 많고 해서 일체 참견하지 않지. 일요일 법회 젊은 사람들도 잘 이끌고 불사도 잘하고 다 알아서 잘해.<br>

스님! 하루종일 이렇게 혼자 계시면 심심하지 않으신가요? <br> 심심할 겨를이 없어. 기도하고, 염불하고, 사경하고, 축원 올리고, 포행하고… 하루가 언제 갔는지 모르겠어.<br> 어떻게 왜 왔는지도 제대로 모르고 가는 범부중생의 나쁜 버릇 고쳐주시려고 부처님께서도 45년간 설법하셨지. 한자리에 앉는 것도 5백생의 인연이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일찍이 부처님법 만나 이렇게 살아온 것에 감사해.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지.

출처: 범어사 청년회 카페                                          </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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