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현(2010-03-22 09:34:04, Hit : 4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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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뱀 꼬리의 ‘폭탄선언’

뱀 꼬리의 ‘폭탄선언’  




뱀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따뜻한 볕을 쬐며 똬리를 틀고 낮잠도 즐기고, 먹잇감을 발견하면 순식간에 집어삼켜서 포만감에 행복해하며, 가고 싶은 곳이면 어디든 가고 숨어야 할 일이 생기면 재빨리 구멍을 파고들어 위험을 모면하는 뱀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니, 왜 꼭 자기만 앞장서서 가야한다는 거야?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냔 말이야!”

가히 쿠데타적 발상이라고도 할 만한 불만을 터뜨린 녀석이 나타난 것입니다. 게다가 이 녀석은 또 다른 뱀이 아니라 평소 별 탈 없이 머리가 가는 대로 잘 끌려가고 있던 뱀의 꼬리입니다.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오른 지는 꽤 되었지만 꼬리인 주제에 불만을 터뜨리지 못하고 그냥 속으로 꾹꾹 눌러 삼켰습니다. 그래도 자기의 이런 불만을 머리가 언젠가는 알아주겠거니 하며 참고 지내왔지만 머리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제 가고 싶은 곳으로만 갈 뿐입니다. 머리와 꼬리는 한 몸이니 ‘나 꼬리는 머리가 하는 짓을 더 이상 보지 못하겠다’며 독립하겠다고 갈라설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하여 꼬리가 어느 날 머리에게 폭탄선언을 하였습니다. “내가 앞에서 가겠다.”

머리는 농담인 줄 알았습니다. “이것 봐, 꼬리. 지금까지 잘 지내왔잖아. 갑자기 왜 이러는 건데? 세상은 본래 머리가 앞에 있고 꼬리가 뒤에 오는 법이야. 지금까지 나를 따라다니면서 네가 손해 본 것 있니? 없잖아. 그냥 살던 대로 살자구. 어디 나 혼자 잘 살겠다고 내가 기어 다닌 적 있어? 다 너 좋으라고 살아왔어.”

“머리가 가는 길만 따라갈 수 없어!”

청춘시절 저항심 “살아봐야 깨우쳐”

머리는 꼬리의 ‘주인선언’을 대번에 묵살했습니다. 하긴 말도 안 되지요. 지금까지 머리가 가는대로 딸려오기만 했던 꼬리가 어떻게 앞장서서 이 거친 황야를 돌아다니겠습니까. 머리가 온 신경을 곤두세워서 위험을 피해가며 기어 다니니 꼬리는 이런 안락함이 거저 얻어지는 것인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머리는 꼬리를 무시하고 하던 대로 기어갔습니다. ‘머리가 가면 따라와야지 꼬리 제가 별 수 있어?’ 그런데 몸이 길게 늘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려 해도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꼬리가 나무에 자기를 감고 버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래도 네가 갈 수 있는지 어디 보자’하는 심정으로 보란 듯이 나무둥치를 감고 버티고 있으니 머리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머리가 졌습니다. 꼬리가 이겼습니다. 이제 꼬리는 그토록 원하던 대장이 되어서 자기가 앞장서서 나아갔습니다. 하지만 꼬리는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바로 앞에 불구덩이가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꼬리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앞서 가다가 불구덩이를 피하지 못하고 속으로 떨어졌고 결국 뱀은 불에 타 죽고 말았습니다.

“살아봐라. 나도 니들 나이 때는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몰랐다. 내 말 들어.” 노인들의 이 한 마디는 사실 온몸으로 공부한 끝에 발견해낸 진리인지도 모릅니다. 그것도 ‘일평생’이라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인생수업료를 지불하면서 배운 것이지요. 하지만 피가 끓는 청춘은 저항하게 마련인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이치가 또 하나 있지요. 그건 바로 저항하느라 앞에 있는 불구덩이를 보지 못하는 청춘을 어르고 달래주며 그 재난을 함께 무사히 건너는 책임이 ‘나이 든 자’의 몫이라는 사실이 아닐까요. ‘나이’는 이래저래 나잇값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미령 /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고통받는 이들에게 자비를 실천하라
나이에 대처하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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