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현(2010-03-22 09:28:06, Hit : 479, ) 
 나이에 대처하는 자세

나이에 대처하는 자세
비밀인가 무기인가


몇 해 전에 방영된 텔레비전 연속극의 내용입니다. 연인사이인 선남선녀가 지겹도록 밀고 당기며 서로의 맘을 확인하더니 마침내 결혼하기로 하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나이를 먹을 대로 먹었고 직장도 있고 화목한 가정의 자제들인지라 결혼에 골인하기에 어려울 것은 하나도 없어 보였습니다. 이제 두 사람은 양가 어른들을 찾아뵙고 자신들의 뜻을 밝히며 최종 허락을 받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남자 쪽 어른을 찾아뵙고 나온 여성이 눈물바람입니다. 몹시 자존심 상하고 억울하다는 표정이었습니다. 그건 남자 집안에서 그녀를 그리 탐탁지 않게 여겼기 때문인데 그 이유는 여자 나이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분명 남자 역시 그리 가벼운 나이는 아니건만 쉽게 결혼승낙을 내려주려니 뭔가 좀 억울하였던지 아무튼 여자 나이를 트집 잡으며 “다 괜찮은데 나이가…”라면서 괜히 한 번 고개를 갸우뚱했던 것입니다.

어두운 대문 앞에서 그녀가 엉엉 울면서 내뱉은 한 마디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내게는 생생합니다.

“내 나이가 어때서? 내가 나이를 먹은 거지 똥을 먹은 건 아니잖아!”

물론 극 속에서는 이 작은 소동도 무사히 넘기고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방송작가 김수현 씨의 드라마 속 이 대사 한 마디는 특히 ‘나이 듦’ 또는 ‘나이든 사람’을 각별하게 대하는 우리 사회에서 매우 의미 있는 메시지가 아닐까 합니다.

밝히기 꺼리고 묻기도 삼가는 나이

다툴 때는 누구나 “당신 몇 살이야?”


사실 나만 하여도 외출할 때는 내 나이보다 한 살이라도 어리게 보이려고 꾸밉니다. 사람들과 서로 나이를 밝히며 인사를 나눌 때 “어? 정말 그 나이예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아요.”라는 말을 들으면 인사치레인 줄 알면서도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대체 이 ‘나이’란 녀석이 얼마나 지독한 세균이기에 수많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나이 밝히기를 꺼리고 상대의 나이를 묻는 일도 삼가는 것일까요? 그렇다고 나이를 먹지 않을 사람은 이 지구상에 단 한 사람도 없으며, 세속을 떠난 스님들조차도 ‘법랍’이란 게 있을 정도인데 말입니다.

사람들에게 이렇게 구박받는 나이이지만 이런 나이가 비장의 카드로 쓰이는 일도 종종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지하철이나 버스에서의 ‘노약자우대석’은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나이순서’로 채워집니다. 임신한 여성이라고 해도 “나이도 어린 사람이…”라며 매서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건장한 초로의 신사분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합니다. 높은 산을 거침없이 오르며 젊을 때와 다르지 않는 체력을 자랑하는 등산복 차림의 어른들도 지하철의 노약자우대석 만큼은 젊은 약자(弱者)에게 양보하지 않습니다.

그 뿐인가요? 온갖 문제로 논쟁하고 다투다가 상대가 조금도 자기 의사를 꺾으려 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이렇게 소리치고 맙니다.

“당신, 몇 살이야?” 물론 이렇게 호통을 치려면 어림짐작으로라도 자기보다 어리다는 것을 확인한 뒤여야 합니다. 나이까지 들먹이게 되면 게임은 끝! 상대방은 이제 협상테이블에 나올 수 없습니다. 나온다 해도 ‘연세 드신 분’의 입장을 고려해서 토론이나 협상에 임하거나 그게 싫으면 상대하지 말고 떠나야 합니다.

“나이 먹은 게 무슨 자랑이라고….”

젊은 사람이 한껏 투덜댄다는 말도 이것뿐입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서 나이만큼 억울한 것도 없을 듯합니다. 웬만한 자리에서는 가급적 꽁꽁 숨겨두어 제 대접을 받지 못하게 하면서도 가장 아쉬울 때만 꺼내 보이니 말입니다.

이미령 /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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